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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 원미동 사람들 中 <한계령>

2025-01-29 15:14

양귀자 | 원미동 사람들 中 <한계령>

1. 소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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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원미동 사람들
  • 저자: 양귀자
  • 단편소셜 제목: 한계령
 

2. 읽게 된 계기

평소에 문학과는 거리가 있는 성격이었지만, 새로운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며 되찾은 여유가 문학이 그리는 현실과 낭만으로 이끌었다. 나는 어떤 스타일의 문학을 좋아하는지 생각하던 중, 중고등학생 시절 공부하며 스쳐 지나간 수많은 문학 작품들 중 내 머릿속에 남은 이 작품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더 살기 쉬워졌다고 할 수 있는,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살기 더 팍팍해졌다고 할 수 있는 오늘날에 나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이 어떠한 목표를 향해 삶을 열심히 단련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인플루언서와 자칭 성공했다고 말하는 위인들은 명확한 목표 설정이 성공을 향한 나침반이라는 듯 이야기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뚜렷하게 손에 잡힐 듯한 목표를 잡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정확한 걸 좋아하지만, 목표,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해서 꿈만큼은 이상하리만큼 추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잡는 편이다. 이 작품이 기억에 남은 이유도 그러한 내 생각이 잘 묻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명확한 목표를 달성한 이후 허망해진 한 인물의 인생을 그린 이 작품이 머릿속에서 대단히 희미해져가던 지금, 다시 한 번 꺼내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3. 소설의 주제, 간단한 내용 요약

이 소설은 25년 전 전주의 한 동네에서 함께 살던 ‘나’와 ‘은자’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내용이 전개된다. 어린 시절 노래를 잘 부르던 ‘은자’는 현재 부천에서 밤 무대를 뛰며 나름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고, ‘나’ 또한 부천에 살며 신문에 이따금씩 실릴 만큼의 작가로서 썩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나’는 25년 만에 ‘은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은자가 같은 지역에서 노래를 하며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며 한 번 공연에 놀러오라는 권유를 받지만 반가움의 감정과는 모순적으로 계속해서 그 자리에 가는 것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나’는 오빠를 총 다섯, 여동생을 하나 둔 여자 인물이다. 그중에서 큰오빠는 일찍 아버지를 여읜 가정에서 많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온 인생을 다 바친 책임감 있고 무게감 있는 인물로 그려지며, 여섯의 동생들이 나름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된 지금 목표를 잃어버리고 허망함과 술에 빠진 삶을 살게 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소설의 키워드는 두 가지이다. 바로 ‘추억’과 ‘목표’이다. 누군가는 가끔씩 “추억은 추억대로 내버려 둘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딱 이 소설의 ‘나’가 망설여 하는 그 감정이 이것과 같다. 25년 전 전주에서 함께 꾸려가던 삶의 예쁜 추억은 그 지역의 재개발로 인해 대부분 빼앗기고 말았고, 유일하게 그 시절의 추억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추억하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은자’였다. 그런 ‘은자’를 현실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은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 남아 있는 추억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한편, ‘나’의 큰오빠는 많은 동생을 성공시키고 정작 본인은 추억에 묻어 있는 집을 팔지 않겠노라 고집을 부리며 그 집에서 매일같이 술로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다. ‘목표’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맞춰져 있었고, 달성해 버린 이후에는 더 이상 바라볼 게 없어지면서 생긴 일종의 허망감이었다.
 

4. 인상 깊었던 부분

MBTI가 대단히 유명해진 오늘날에 오랜만에 과거의 소설을 다시 읽으니 인물의 성격이 MBTI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점이 신기했다. 25년 만에 전화해서 높은 텐션의 목소리로 ‘나’에게 반가움을 전하고 바로 공연에 놀러오라고 권유하는 ‘은자’의 모습은 확신의 E로 보였고, 분명 ‘은자’가 반갑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공연에 놀러가는 것을 망설이고 이런 저런 생각에 압도되어 창가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확신의 INF라고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MBTI를 떠나서 ‘은자’가 대단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점은, 놀러오라는 수차례의 권유에도 계속 놀러오지 않는 ‘나’를 보며 크게 상처받지 않고 여러 번 전화하며 다시금 권유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러한 태도에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야만 하겠지만, 이러한 태도를 보일 수 있을 만큼의 당당함을 갖춘 ‘은자’가 멋지게 보인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가 ‘은자’의 권유에 대해 계속해서 망설인 것은 단순히 내성적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25년 전의 추억을 유일하게 순수한 모습 그대로 간직해준 존재가 ‘은자’였기에, 그를 다시 보기에 두려운 마음이 생긴 것이 더 컸을 것이다. 나도 이 부분에 깊게 공감이 되었는데, 내 인생의 히스토리에 나름 굵직한 커밋을 남긴 사람들이 이따금씩 궁금해질 때면 연락을 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도 한다. 그저 그때를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 오히려 연락을 해서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추억이 추억으로 남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편, ‘나’의 큰오빠가 많은 동생을 부양하고 끝내 성공시킨 이후에 정작 본인의 삶은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술에 빠져 인생을 흘려보내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나의 큰 외삼촌도 살아계실 적에 한 번도 나에게 웃는 모습을 보이신 적 없고, 언제나 동생들을 비롯하여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남 모를 아픔을 숨기고 지내고는 하셨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목표 의식이 어떠한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내가 열심히 돈을 벌고, 그 돈을 철저히 관리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의 기저에도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가장 두껍게 깔려 있었다. 그렇다고 ‘나’의 큰오빠가 맞이한 결말을 보고 이러한 내 마음가짐을 반성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큰오빠가 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는지 공감이 됐고, 그것이 그에게는 정말 커다란 우선순위였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다. 아마 술로 매일 하루를 보내는 과정에서도 결국에는 자기만의 인생을 잘 구축하고 지내고 있는 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남 모를 뿌듯함을 굉장히 느끼고 있었을 거라고 자신한다. 다만 그러한 목표를 달성했다고 느껴진 이후에도 자신의 인생을 계속해서 선명하게 그릴 수 있는, 이로 인해서 허망함과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또 다른 동력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을 뿐이다. 결말만을 보고 그의 인생을 누구도 질타할 수는 없는 법이다.
 

5. 읽고 난 후기

제목도 희미해지던 이 소설의 제목을 간신히 찾아 읽어보기로 한 나의 실천력을 칭찬했다. 문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생활이었기에 문학의 불씨를 살려보겠다는 마음도 어느 한 구석에는 있었지만, 이 작품이 나에게 주었던 인상이 과연 당시 교과목에서 주입한 관념인 것인지, 실제로 내가 느낀 감정인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작 중고등학생 때는 원문으로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하게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교과서나 참고서에나 나올 법한 인물, 배경, 시대상, 해석 등의 분석을 떠나서, 오로지 내 시선 하나만으로 작품을 있는 그대로 감상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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